아빠가 요리하는 가족 보양식, 추억 속의 오리 죽

추억 속의 요리라고 한 이유는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남편이 어렸을 때 해 주시던 음식이기 때문입니다.
순전히 어린 소년의 어설픈 눈과 입맛에만 의존해서 만든, 정답을 확인할 길 없는 오리 죽이지요. ^^

혈압이 있으셨던 어머님께서 약 삼아 자주 드셨다고 하는데, 남편은 그 맛을 가끔 이야기하곤 했어요.

벗트!! 그러나!!
저는 한 번도 오리죽은 커녕 집에서는 오리 로스도 안 해 주었다는....
어머니가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면 아마 막내며느리에게 눈을 살짝 흘기시지 않으셨을까요? 호호호

장을 같이 보게 된 어느 날, 정육 코너에 이따만한 오리가 궁딩이를 보이며 돌아앉아 있는 걸 본 남편이 오리 죽을 끓여 주겠다며 사더군요.
사실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더구나 오리 맛을 안 지가 별로 안 된 터라 희멀건 오리 죽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. ^^
의욕에 가득 차서 집에 돌아 오자 말자 주방에 자리 잡은 남편 뒤에서 우아하게 바라만 봤습니다.

재료;   오리 1마리, 찹쌀, 소금, 맛술, 마늘

고기를 삶는데, 소금만 넣으려고 하다니..
웬만하면 참견을 안 하려고 했지만, 냄새 나서 못 먹게 될까봐 걱정이 돼서 있는 양념이니 맛술하고 마늘이라도 넣으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어요.
음식하는데 누가 참견하면 싫잖아요. ^^   더구나 요리 시작하면서 남편이 어릴때 엄마가 하던 그대로 할 거라고 절대 참견하지 말라고 했거든요.   하지만 30여년전 어린 남자 아이가 제대로 봤을지도 의문스럽고 기억이라는게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 지거나 빼지기도 하는터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. ㅎㅎ

엄마는 그런거 안 넣었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맛술과 마늘을 찾아 넣었습니다.(마치 저를 봐준다는 듯이... 칫!)

고기를 삶기 전 살코기만 대충 따로 떼어 소금과 후추를 넣어 로스를 해 주길래 깻잎 장아찌에 싸서 먹었어요.
마치 식당에서 파는것 같이 맛이 있더군요.

한 번 삶아 내고 끓이라고 또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얘기 했건만, "쉿!"소리만 듣고 말았지요.
...그냥 삶더라구요.   엄마는 그랬다며... ㅜ  (누가 확인 좀 해 주실 분~~~)

고기가 거의 다 익을때 쯤 불려놓은 찹쌀을 붓고 저어 가며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을 싱겁게 맞춰 가족 수 대로 한 그릇씩 담아 줍니다.



로스를 후딱 먹고 아빠만 바라 보던 아이들이 냉큼 다가 앉습니다.


여전히 내 머릿속에는
'아무리 어려운 시절이었어도 시골인데 부추 정도는 넣지 않았을까?   아마 녹두를 넣으셨을지도 모르지.'
다양한 의문이 떠 올랐지만 참았습니다. 꾸욱~~~

남편은 바로 이 맛이라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이것 저것 들려 주며 살을 발라 아이들과 저의 숟갈에 얹어 줍니다.

새콤한 고추 장아찌와도 잘 어울리네요.

"맛있지? 자기야. 맛있지? 얘들아. 응?응?"


아무쪼록 아빠의 오리 죽을 먹었으니 올 여름 더위는 충분히 이기겠지요? ^^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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